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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쉽게 알아보자 7 – 신라의 삼국통일, 신라 중대 왕들(무열왕~혜공왕)

by 토마토킴 2023.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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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지난번에 이어서 신라 상대의 왕들(진지왕~진덕여왕)에 대해 이야기하고, 삼국통일과 신라 중대 왕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1000년의 신라 역사는 상대, 중대, 하대로 구분됩니다. 이것은 혈통에 따른 구분입니다. 상대는 성골만이 왕이 되었던 시대로 박혁거세로부터 진덕여왕까지입니다. 중대는 무열계 진골이 왕이 되었던 시대로 태종무열왕부터 혜공왕까지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대는 내물계 진골이 왕이 되었던 시대로 선덕왕부터 신라마지막 왕인 경순왕까지입니다.


1. 신라의 상대 왕들(박혁거세~진덕여왕)


6) 진지왕, 진평왕
진흥왕이 죽고 아들 진지왕이 신라의 25대 왕위에 오릅니다. 진지왕은 방탕한 생활을 하다 5년 만에 폐위되었다고 합니다.
진지왕이 폐위하고 난 후 진평왕이 신라의 26대 왕이 됩니다. 서동요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진평왕은 선화공주의 아버지가 됩니다. 진평왕은 지증왕, 법흥왕, 진흥왕 때 처음 실시된 제도들을 정착시킵니다. 예컨대 법흥왕 때 제도화되었던 골품제는 진평왕 때에 완성되었는데, 원래 없던 성골이라는 개념도 아들이 없던 진평왕이 공주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기 위해 일부러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화랑도 또한 기존에는 제사 위주의 집단이었다면 진평왕 때부터는 군사적 기능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7) 선덕여왕

황룡사9층목탑복원도와첨성대
황룡사 9층 목탑 복원도(좌)와 첨성대(우)

진평왕에겐 아들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골품제에 의하면 성골만이 왕이 될 수 있었기 때문에 장녀였던 덕만공주를 여왕으로 즉위시켰고, 바로 신라의 27대 왕 선덕여왕입니다. 선덕여왕은 여왕으로서 본인이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왕의 위엄과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황룡사 9층 목탑과 같은 대규모 사찰을 건립합니다. 또한 천체 원리를 유일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 왕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첨성대를 만들었습니다.
그럼에도 경주 기반의 토착 진골들은 토착 귀족들과 함께 선덕여왕을 압박해 갔습니다. 그래서 선덕여왕은 본인을 지지해 줄 측근들을 만들었습니다. 그 첫 번째가 가야계 왕족 출신의 김유신이었고 두 번째가 진골 중에서 약간 아웃사이더였던 김춘추였습니다.
642년 선덕여왕에게 큰 위기가 찾아옵니다. 바로 백제의 의자왕이 대야성을 함락하고, 성주였던 김춘추의 사위 김품석과 딸 고타소를 죽인 것입니다. 김춘추는 백제에 복수하기 위해 고구려(연개소문)와 왜에 갔지만 협상이 결렬되었고 이후에 당나라로 넘어가 나당동맹을 맺습니다. 또한 김춘추가 일본에 있을 때 상대등 비담이 이끄는 경주 토착 진골과 귀족들이 선덕여왕을 끌어내리려고 반란을 일으켰다가 김유신에게 진압 당합니다(진덕여왕 즉위 9일).


8) 진덕여왕

태평송
태평송

선덕여왕이 죽고 사촌이었던 진덕여왕이 신라의 28대 왕위에 오릅니다. 진덕여왕은 어수선한 정국을 빠르게 수습하고 중앙집권국가 체제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집사부를 설치합니다. 또한 능력에 맞게 인사를 등용하였고 김춘추, 김유신과의 관계도 견고하게 유지하여 귀족들을 견제합니다. 그리고 백성을 안정시키는 일에 주력하면서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백제와 고구려를 견제했습니다.
진덕여왕 때에도 고구려와 백제는 계속적으로 신라를 압박했습니다. 그래서 진덕여왕은 또다시 김춘추를 당나라로 보내 나당동맹을 맺습니다. 당태종은 동맹을 맺는 조건으로 신라로 하여금 당나라 연호를 사용하게 했고, 진덕여왕은 당태종을 칭송하는 글 태평송을 지어 보냄으로 당태종의 환심을 삽니다.


2. 신라의 삼국통일과 신라 중대 왕들(무열왕~혜공왕)



1) 태종무열왕, 백제의 멸망
무열왕전까지는 신라의 상대 시대라고 하고 무열왕부터 그의 직계후손이었던 혜공왕까지는 신라 중대 시대라고 합니다. 진덕여왕이 죽자 김유신의 강력한 비호하에 김춘추가 신라의 29대 태종무열왕으로 즉위합니다. 무열왕의 집권 후 돌궐족을 완전히 제압한(659년) 당나라는 밀약대로 백제 멸망전을 위해 전쟁에 참여합니다. 소정방이 이끄는 13만 당나라군은 사비성으로 향했고, 김유신이 이끄는 5만의 신라군은 황산벌에서 계백의 결사대와 싸워 이긴 후 사비성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660년 백제는 멸망합니다. 의자왕의 항복 후 백제 유민들이 부흥운동을 전개하는데 무열왕은 직접 진압전쟁에 참전했다가 사망합니다(661년).


2) 문무왕, 고구려의 멸망, 삼국통일

기벌포전투
기벌포 전투

무열왕이 사망하고, 무열왕의 아들이자 김유신의 조카였던 문무왕이 신라의 30대 왕으로 즉위합니다. 백제의 부흥운동이 실패하고 당나라는 백제 땅에 웅진도독부를 설치하고 부여융을 도독으로 앉힌 다음 강제로 부여융과 문무왕을 화해시키고 다시는 싸우지 않도록 맹약을 맺게 합니다. 심지어 신라에 계림도독부를 설치하여 문무왕을 계림도독이라며 멸시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668년에는 당나라군과 신라의 김유신의 보급부대가 연합하여 고구려까지 멸망시킵니다.
그 후 신라는 고구려 부흥운동 세력들과 힘을 합해 한반도 내 당나라의 영향력을 쫓아내기 위한 나당전쟁에 돌입합니다. 나당 전쟁 초반에는 신라가 밀렸지만 675년 매소성 전투에서 신라군대가 당나라 군대를 초토화시키고, 676년 신라의 시득 장군이 수군을 이끌고 기벌포 전투에서 23번 중 22번을 이기며 당나라 수군의 상륙작전을 좌절시킵니다. 기벌포 해전에서 결정적인 패전을 하자 가뜩이나 한반도 장악에 회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던 측천무후는 한반도에 주둔하고 있던 당나라의 전 병력을 후퇴시키고 평양에 있던 안동도후부 역시 요동 근처로 옮깁니다. 이로써 대동강 이남에 이르는 한반도 역사상 첫 통일 왕조가 들어서게 됩니다.


3) 신문왕
문무왕의 뒤를 이은 31대 신문왕 때 신라는 중앙집권적 관료제 국가로 거듭납니다. 무열왕과 문무왕을 거치면서 토착진골귀족들의 힘이 많이 약해졌지만 삼국통일전쟁 과정에서 전쟁공신들이 대거 나오면서 다시 토착진골귀족들의 힘이 강해집니다. 신문왕은 이들을 멀리하기 시작했고, 대표적인 전쟁공신이었던 김군관을 해임해버립니다. 이에 전쟁공신 귀족이었던 김흠돌을 중심으로 토착진골귀족들이 다시 모이기 시작했고, 신문왕 즉위연도였던 681년 김흠돌이 반란을 일으킵니다. 신문왕은 반란에 가담했던 진골 귀족들을 대거 숙청해 버리면서 매우 강력한 왕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신문왕은 이러한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귀족들을 견제하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녹읍을 폐지하고 관료전을 도입했습니다. 당시 귀족들은 녹읍이라는 땅을 받았는데, 귀족들은 녹읍에 사는 사람들에게 세금을 받고 노동력도 마음대로 쓸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귀족들이 사람들의 노동력을 사병을 기르는데 쓰고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신문왕은 녹읍을 관료전으로 바꾸고 세금은 거둘 수 있지만 노동력은 쓰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중앙집권체제를 더 확고히 하기 위해 전문 관료집단을 키우기로 하고 국학을 설치하여 육두품들을 교육해 중용했습니다.
9주 5소경 : 또한 신문왕은 효율적인 나라 운영을 위해 중앙 및 지방 통치제도를 정비했습니다. 나라를 9개의 주로 나누어서 다스렸는데, 이를 9주라고 합니다. 이 각각의 주안에는 더 작은 군과 현을 두고 지방관을 보내어 왕의 명령에 따라 운영하도록 했으며, 지방관이 들어갈 수 없는 더 작은 촌은 촌주가 다스리게 했습니다. 또한 신라의 수도가 한반도 끝인 경주에 있다 보니 전체적으로 나라를 다스리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수도를 여러 개 설치하자는 생각에 5소경(다섯 개의 작은 수도)을 설치합니다.
9서당 10정 : 신문왕은 나라를 지키는 군사 제도 또한 정비했습니다. 수도에서는 신라인, 백제인, 고구려인, 말갈인 등 다양한 민족이 모인 9서당이라는 중앙군을 편성했고, 지방의 각 주에는 정이라는 군사조직을 하나씩 배치하여 10정을 세웠습니다(국경지대인 한 주에만2정을 배치).


4) 효소왕
신문왕이 죽고 만 5세의 어린 효소왕이 32대 왕으로 즉위하는데, 너무 어린 관계로 왕비였던 신목왕후가 섭정을 합니다. 효소왕은 서시와 남시를 설치하고 이를 감독하는 서시전과 남시전도 설치했습니다(지증왕 때 동시, 동시전). 만 15세의 어린 나이에 사망합니다.


5) 성덕왕
효소왕이 죽고 신문왕의 둘째 아들인 성덕왕이 신라의 33대 왕위에 오릅니다. 성덕왕은 백성들에게 정전을 지급했습니다(722년). 정전은 일반 백성의 사유지였던 전답의 소유권을 국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었고 이를 통해 국가의 재정도 탄탄해졌습니다.
그리고 성덕왕은 한국 최초의 동종인 상원사 동종(725년)을 제작했으며, 누각(물시계)을 제작하고 이를 관리하는 누각전을 설치했습니다(718년). 또한 제사를 관장하는 전사서를 설치했고, 관료가 지켜야 할 도리를 담은 백관잠을 만들었습니다.
성덕왕은 당나라와 매우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매해 당나라로 사신을 보내 조공을 하였고, 당나라의 요청을 받아 발해를 공격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적극적인 외교정책으로 당나라로부터 지금의 대동강 이남의 땅을 영토로 인정받았습니다.


6) 경덕왕

불국사와석굴암
불국사(좌)와 석굴암(우)

성덕왕이 죽고 차남이었던 효성왕이 신라의 34대 왕위에 올랐으나 5년 만에 후사 없이 왕위에서 물러납니다. 그리고 성덕왕의 삼남이었던 경덕왕이 신라의 35대 왕위에 오릅니다.
경덕왕은 기존의 , 군, 현의 명칭을 중국식으로 바꾸었습니다(사벌주-상주, 달구벌-대구). 그리고 국학을 태학감으로 이름을 바꾸고 박사와 조교를 두어 유교 교육을 진흥시켰습니다. 또한 경덕왕 때는 귀족들의 반발이 너무 심하여 녹읍을 부활했습니다.
경덕왕 때 신라의 문화가 꽃을 피웠다고 하는데요, 가장 상징적인 것이 불국사와 석굴암입니다. 불국사와 석굴암을 불국사를 창건한 사람은 김대성이라는 사람으로 그가 현세의 부모를 위해 지은 것입니다. 불국사의 대웅전은 앞에는 다보탑과 석가탑이 마주 보고 있는데, 석가탑안에서 무구 정광 대다라니경(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이 발견되었습니다. 불국사와 석굴암은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7) 혜공왕

성덕대왕신종
성덕대왕신종

경덕왕의 아들이었던 36대 혜공왕은 무열계의 마지막 왕으로 8세에 왕위에 오릅니다. 어린 나이에 왕이 되었기 때문에 어머니였던 만월부인이 섭정을 했으나 왕실의 권위가 떨어지고 만월부인이 정치를 제대로 못하자 각간 벼슬을 하던 대공이 동생 대렴과 함께 반란을 일으킵니다(대공의 난, 768년).
대공의 난은 귀족 반란의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대공의 난을 계기로 전국에서 일어난 귀족들이 서로 3년이나 싸우게 됩니다. 이때 반란을 일으킨 귀족과 이를 진압한 귀족들이 96명에 이른다고 해서 이를 ‘96각간의 난이라고 합니다. 이후 신라 중대를 지탱하던 전제왕권은 서서히 무너지게 됩니다. 이렇게 대공의 난과 96각간의 난을 통해서 내물계의 후손 김양상이 상대등에 올랐는데, 이는 김양상이 귀족세력의 정권을 장악했다는 의미입니다.
성인이 돼서도 음탕하고 노는 데 절제가 없는 혜공왕을 보고 김지정이 난을 일으킵니다(780년). 그러자 상대등 김양상과 동생 김경신이 군사를 일으켜 김지정을 진압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혜공왕은 반란군에게 살해되었고, 상대등 김양상이 왕으로 즉위하여 신라의 37대 선덕왕이 됩니다. 동생 김경신은 선덕왕을 이어 38대 원성왕이 됩니다.
혜공왕은 왕권이 약해지자 선조들의 힘을 빌어 왕권을 강화해 보겠다는 생각에 5묘제(미추왕, 무열왕, 문무왕, 성덕왕, 경덕왕에 대한 제사)를 시행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경덕왕이 만들기 시작했던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을 완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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