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최초의 국가였던 고조선이 멸망하고 7개의 나라가 세워졌습니다. 오늘은 고조선 멸망 후 탄생한 부여, 고구려, 옥저, 동예, 그리고 삼한이라고 불리는 마한, 변한, 진한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1. 부여, 고구려, 옥저, 동예
1) 부여
고조선 후에 나타난 7개의 나라 중에 부여와 고구려는 왕이 있는 연맹 왕국이었고, 나머지 옥저, 동예, 삼한은 왕이 없는 군장 국가였습니다. 이 두 나라의 왕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왕처럼 강력한 왕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부여에서는 나라에 흉년이 들면 왕의 탓으로 돌려 죽이거나 왕을 끌어내리기도 했습니다.
부여는 왕을 중심으로 마가, 우가, 저가, 구가 4개의 가들이 모여 있는 5부족 연맹체였고, 각 가들이 다스리는 지역을 사출도라고 부릅니다. 부여는 쑹화강 유역의 평야지대에 자리를 잡아 농경과 목축이 발달한 반농반목의 생활을 하였는데, 4개의 가들의 이름을 가축에서(마가는 말, 우가는 소, 저가는 돼지, 구가는 개) 따온 것만 봐도 가축이 매우 중요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부여에서는 12월에 영고라는 제천 행사를 열어 하늘을 숭배하고 제사를 지내 농사의 풍요와 성공적인 사냥을 기원했습니다. 왕이 사망하면 옥갑을 입고 아랫사람도 부장 하는 순장이라는 풍습이 있었으며, 형이 죽으면 형수를 취하는 형사취수제와 소의 발굽으로 길흉을 점치는 우제점법 등의 풍습이 있었습니다.
또한 부여는 나름 엄격한 법률이 있었습니다. 살인자는 사형에 처하고 그 가족은 노비로 삼았고, 1책 12법이 있어 도둑질한 사람은 물건값의 12배를 배상해야만 했습니다. 간음한 자는 사형에 처했으며, 투기가 심한 부인은 사형에 처했습니다.
이렇게 부여는 독자적인 사회문화를 이뤄가며 성장했지만 3세기말 선비족의 침략으로 세력이 위축되었고, 결국에는 5세기말 고구려에 흡수되며 멸망합니다(문자왕 494년).
2) 고구려
고구려는 앞에서 살펴본 부여와 비슷한 부분이 많은데, 고구려를 세운 주몽이 부여에서 온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고구려 역시 부여처럼 왕이 있었고, 왕을 중심으로 한 5부족 연맹체를 이루었습니다. 5부족은 계루부, 절노부, 소노부, 관노부, 순노부였고, 왕 밑으로는 상가, 패자, 고추가, 사자, 조의, 선인 등의 관리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회의를 통해서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했습니다.
고구려의 제천행사로는 동맹이 있었습니다. 결혼 풍습으로는 남자가 혼인한 후 일정 기간 처가에서 살다가 가족을 데리고 남자 집으로 돌아가는 서옥제가 있었으며, 부여와 동일한 1책 12법의 법률도 있었습니다.
3) 옥저
옥저는 부여와 고구려와는 달리 왕이 없이 읍군 또는 삼로라고 불리는 군장이 다스리는 사회였습니다. 옥저는 바다 근처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해산물이 풍부했고, 동해안의 비옥한 농경지를 활용해 농경도 발달했습니다. 옥저는 이렇게 수확한 해산물이나 곡식들을 고구려에 공물로 받쳤습니다. 하지만 결국은 고구려에게 멸망합니다.
옥저에는 골장제라고 부르는 가족 공동 무덤이 있었고, 결혼 풍습으로는 어린 여자아이를 남자의 집에서 키우다가 성인이 되면 예물을 주고 아내로 맞이하는 민며느리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옥저에는 기록된 제천행사가 없습니다.
4) 동예
동예 역시 옥저처럼 왕이 없이 읍군, 삼로라 불리는 군장이 다스리는 사회였습니다. 동예 역시 바닷가 근처에 위치하고 있어 농경에 유리했고, 해산물이 풍부했습니다. 동예의 특산물로는 단궁(짧은 활), 과하마(조랑말), 반어피(물개 가죽)가 있었고, 옥저와 마찬가지로 고구려에 공물을 바쳐야 했습니다.
동예의 제천 행사로는 무천이 있었습니다. 동예는 족외혼을 엄격하게 지켰고, 다른 부족의 영역을 침범하면 노비나 소, 말 등으로 배상하는 책화의 풍습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자의 철자 모양과 여자 모양의 집터에서 생활하였습니다.
2. 삼한(마한, 진한, 변한)
한편 기원전 2세기경 부여와 고조선이 공존하던 시기에 한반도 중부와 남부 지역에는 '진'이라는 토착 세력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조선의 멸망과 함께 유민들이 남쪽으로 이주해 왔고, 이들에 의해서 '진'국에 새로운 문화(철기문화)가 보급되었습니다. 이후 고조선의 유민 집단은 기존의 토작문화와 자연스럽게 융화되면서 발전을 이루었고, 이윽고 마한, 진한, 변한이라는 연맹체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마한, 진한, 변한을 합쳐 삼한이라고 하는데, 마한은 지금의 경기, 충청, 전라도 지역이고 진한은 낙동강 동쪽 경상도 지역이며, 변한은 낙동강 하류 남해안 지역입니다.
삼한 중 세력이 가장 컸던 마한은 54개의 소국으로 이루어져 있었고(진한은 12개 소국, 변한은 12개 소국), 마한의 여러 소국 중 가장 강력했던 목지국의 지배자가가 마한 왕 또는 진왕으로 추대되어 삼한 전체를 주도했습니다.
삼한 역시 왕이 없었고 신지 또는 읍차라고 불리는 군장이 다스렸습니다. 삼한에는 신지와 읍차 외에 천군이라는 직책의 제사장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삼한이 정치 지도자인 군장과 제사를 담당하는 천군이 각각 존재하는 제정분리사회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천군이 제사를 주관하는 소도에는 범죄자가 들어가도 군장이 잡아갈 수 없었을 정도로 천군의 권위도 대단했습니다.
삼한은 한반도 남쪽 비옥한 평야지대에 위치하여 일찍이 농업이 발달했는데, 철제 농기구를 이용한 벼농사가 발달했습니다. 특히 변한은 철이 유명해서 왜와 낙랑으로 수출했습니다. 삼한에는 1년에 2번 5월과 10월에 제천 행사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삼한은 백제와 신라, 가야의 뿌리이기도 한데, 마한은 백제, 진한은 신라, 변한은 가야로 각각 발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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